떠오르기 시작한 해와 피곤에 찌든 아가씨들을 둘러보며 미소 짓다가
카타리나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건넸다
' 너 오래 버티겠다. '
' 왜요? '
' 눈이 안 죽었거든 '
사무엘라가 피식 하고 비웃는다
' 눈 안 죽은 애들이 제일 먼저 울지요~ '
' 너는 좀 닥쳐 '
' 에붸붸~ 눠는 쫌 닥췌~ '
마담은 두 사람을 보며 슬픈 미소를 짓는다
그리곤 그녀들의 손 한 쪽씩을 붙든 채 조용히 말한다
' 여기서 이런 일한다고 몸까지 함부로 굴리진 마 '
' …. '
' …. '
' 한번 무너지면... 눈빛이 달라져, 오래 가려면 더더욱 선을 지켜... 아니... 그러니까... 내 말은... '
마담의 마지막 말은
터져나오는 울음에 묻혀 끝끝내 들을 수 없었다
도도한 태도 때문인지,
몸은 안 판다는 소문 때문인지,
이상하게 찾는 손님들은 더 늘어갔다
공허한 새벽 퇴근길
편의점 삼각김밥과 컵라면을 들고 숙소 계단을 오를 때마다
과거의 기억이 점점 흩어진다
보증 잘못 섰다가 도망간 아버지
병원 침대 위에 누운 엄마
쌓여가는 독촉장
대학을 휴학하던 날
처음은 옷가게
그 다음엔 콜센터
그 다음엔 물류
버티다 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와버린...
과거가 점점 무뎌져 간다
‘ ... ’
거울 속 자기 얼굴을 보면 웃겼다
태어나길 이렇게 차갑게 생겨서 남자 무시하냐는 소릴 귀따갑게 듣고 살았는데
현실은 그 남자들의 비위를 맞춰주며 술을 따르고 하루 버티고 있으니까...
그런 날이면 꼭 그 애가 귀찮게 굴었다
' 야 찜. '
' 왜 '
' 너 웃으면 예쁠 거 같은데 왜 맨날 장례식 간 얼굴이냐? '
' 시끄러 '
' 한번만 웃어봐 '
' 싫어 '
' 아 재수없엉! 진짜 '
그러면서도 둘은 점점 붙어 다녔다
퇴근 후 해장국.
담배 심부름.
손님 뒷담.
어느샌가 두 사람은
어깨 나란히 하는 가게의 에이스가 되어 있었다
새벽 네 시
사건은 겨울이었다
가게 안에서 유리 깨지는 소리가 났다
카타리나가 뛰어갔을 때
사무엘라는 생채기가 가득한 채로 남자 멱살을 잡고 있었다
' 씨익.. 씨익... 이 개새끼가 진짜... '
남자는 술에 취해 욕을 퍼부었다
' 이, 이! 술집년이! '
직원들이 겨우 둘을 떼어놨고
마담은 한숨을 쉬었다
' 리나. '
' 네 '
' 애 데리고 숙소 가 '
' …네 '
그녀는 작고 귀엽게 생긴 얼굴로 온갖 아양을 떨면서도
매콤한 입담으로 술자리 휘어잡고, 눈빛 하나로 진상들을 찍어누르는 깡다구의 여자였다
그런 쌈닭 기질을 본 사람들은 그녀를 사무엘라가 아닌 쌈무라 불렀다
그러나 그랬던 쌈무가...
택시 안에서는
삶은 닭처럼 눅눅히 젖어있었다
숙소 들어가자마자 소주 두 병을 깠다
쌈무는 첫 잔을 원샷했다
' 크아아아~ '
그렇게 오바를 떤다
리나는 말없이 얼음찜질을 건넸다
' 안 아픈 척 하면 다친 게 괜찮아지냐? '
' ..... '
두 병은 비워진 지 오래
그리고도 한참을 지나서야 물었다
' 오늘 왜 그렇게까지 했어 '
' 그 새끼가... 뭐라 그러더라고 '
' …. '
' 한번 팔려본 년들은 티가 난다고... '
리나의 표정이 굳었다
쌈무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
' 사실, 나 어릴 때 팔려갔었어 '
작은 목소리였다
' 처음엔 동남아 여행인 줄 알았지. 근데 여권도 뺏기고 쳐맞고… 도망치면 잡혀오고 '
방 안 공기가 무거워졌다
' 근데 나 거기서 어떤 한국 남자 만났다? '
쌈무의 눈이 풀렸다
' 밥도 챙겨주고, 말도 걸어주고, 사람처럼... 대해줬어 '
' 좋아했니? '
' …아마. '
잠깐 침묵이 흘렀다
' 근데 나중에 알았어. '
쌈무가 웃는다
완전히 일그러진 웃음이었다
' 그 인간이 납치조직 사장이었대 '
리나의 눈썹이 떨렸다
' 제일 웃긴 건 뭔 줄 알아? '
' …. '
' 나... 그 새끼를 못잊어서 몸을 못 파는거야... '
소주병이 기울었다
' 진짜 미친 거 같지? '
리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
쌈무의 눈가가 붉어졌다
' 근데 어떡해..? 그 지옥에서, 날 사람처럼 대해준... 유일한 놈이었단 말이야… '
작은 등이 들썩인다
리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
대신 조용히 옆에 앉아 등을 쓸어줬다
그날이 처음이었다
쌈무가 리나의 어깨에 기대 잠든 건.
시간은 빨랐다
몇 년이 지났고 마담은 가게를 정리한다고 했다
' 이 바닥도 이제 질린다. '
그 말 한마디뿐이었지만 모두가 납득했다
마지막 날
마담은 쌈무와 함께 술을 마셨다
' 너 이제 남자 다루는 법은 다 배웠지? '
' 아 몰라요~ '
' 많이... 서운하니? '
' 아 모른다구요!!! '
' 원아... 너밖에 없어서 그래... '
결국 쌈무는 가게를 이어받았다
이제부터는 그녀가 마담이었다
새벽.
쌈무와 리나 두 사람은 빈 잔을 앞에 두고 한참이나 말없이 앉아 있었다
긴 침묵을 깨고 먼저 입을 연 것은 쌈무였다
' 갈거라고? '
' 응. '
' 연락은? '
' 가끔. '
' 구라치네. '
리나가 희미하게 웃었다
쌈무는 그걸 보고 서운한 표정을 짓는다
' 야. '
' 왜. '
' 너 나 때문에 일 없어질까봐 도망가는 거 맞지? '
' 지랄... 호랑이 새끼가 어떻게 고양이 새끼 밑에 있냐? '
짧은 대화였다
하지만 둘 다 알고 있었다
힘들 때 가장 먼저 떠오를 얼굴이 서로라는 걸
세상 사람 다 못 믿어도
저 여자는 믿을 수 있다는 걸
비가 내렸다
리나는 뒤돌아 걸었고
쌈무는 오래 그 뒷모습을 바라봤다
아무 말 없이,
누구보다 깊게 서로를 이해한 채
밤의 여왕들은 그렇게 탄생했다
현직이냐
05.16 23:29사무엘라가 쌈무면 물담이는 물달레나냐
05.16 23:33가을의 전설에 이어서 밤의 여왕이구나
05.16 23:36글 진짜 잘 쓴다
05.16 23:56
05.17 06:00
05.17 09:11님이 진짜 대문호임... - dc App
05.18 17:38